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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전통적 하드파워(hard power) 경쟁에서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 세계로 변화한다.”
피터 드러커 교수의 예언이다. 그런데 이 예언은 아직도 유효한가. 그의 예언을 따른다면 우리 시대는 제조업 중심에서 지식·정보·문화로 산업 구조가 바뀌어 전 세계가 문화 역량 키우기에 매달리며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화 전쟁 대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이 넘도록 점점 더 치열해지고 미·중의 군비 경쟁 속에 유럽과 미국 연합 체제는 흔들리고 있으니 그가 예언한 21세기 문화 신세계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인류 역사를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시대별 거대 흐름이 있었다. 유럽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문화, 중세 기독교 헤브라이즘 문화, 르네상스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문화, 그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 문화가 시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금세기에 이르러 러·우 전쟁 이래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국제 질서는 약화되고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신자유주의의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유구한 전설과 홍익인간의 고귀한 이념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이 땅에서 과연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의 새로운 문화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세계사적 격변을 이끈 큰 사건들을 말하자면 유발 하라리 교수가 사피엔스에서 지적한 농업 혁명과 중세 흑사병, 과학 발달과 핵전쟁, 최근의 코로나19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3년간 비대면 시대와 폐쇄적인 집단주의를 불러왔으나 디지털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한국에 그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였다.
1997년 이후, 정부는 문화 수출 계획을 수립하고 문화 강국 실현을 목표로 콘텐츠 연구개발, 해외 진출, 국제 교류 촉진 등을 적극 지원하여 비대면 시대의 글로벌 한류 문화 시대를 열게 된다. ‘대장금’이나 ‘겨울 연가’ 같은 한국 드라마가 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이 되던 2000년도를 지나 2012년 탄생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50억 뷰를 넘어서 한국이 디지털 플랫폼의 최강국임을 전 세계에 입증시켰다.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의 개막과 함께 한류 콘텐츠들은 글로벌 현상이 되면서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가 디지털 시대의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네트워킹 문화에 최적화된 한국은 글로벌 마케팅 역량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불안함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여과 없이 그려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8년 검열제도 폐지 이후 정권이나 재벌의 부패, 경쟁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외면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해 온 것들이 지금 한류의 인기로 이어진 것이다.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웹툰이나 냉정한 사회 비판 능력, 약자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도 빼놓을 수 없는 단단한 한류의 근원이다.
1960년대 전후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 때 절망스럽고 암담한 사회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꾼 그룹이 바로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으로 표현되는 비틀즈(Beatles)의 등장이었다. 사회적인 불안과 좌절의 시대에 비틀즈가 건넨 메시지는 바로 사랑과 희망, 자유와 정의였고 미국인들은 이에 열광했다. 실제 소련의 붕괴는 서구 사회로 유학을 떠났던 소련 젊은이들이 비틀즈의 노래를 고국에 전파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BTS 역시 글로벌 청년 세대의 대표 스피커로서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그들의 팬덤 ‘아미’는 새로운 형태의 초국가적 공동체가 되었고, 이제 한류는 뉴노멀 시대 세계인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이 되었다. 탈(脫)국경화와 보편화를 통해 국가 산업이 된 한류 콘텐츠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 집단의 니즈를 파악하고, 장기적인 창작 활동과 연구개발 지원 등을 통해 인류 통합의 문화 세계사를 새롭게 써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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