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 앙겔라 메르켈의 天命 리더십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8 00:02:55

16년이란 긴 세월 통일 독일에서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 동에서 서로 많은 사람이 빠져나올 때 앙겔라의 아버지는 반대 방향을 택했다. 복음을 전하려는 순수하고 젊은 루터교 목사의 신앙심 때문이었다. 목사 집안인 앙겔라의 가족은 비밀경찰 슈타지의 정밀한 감시하에 있었다. 앙겔라의 아버지는 절망했지만 답답한 공기 속에서도 숨을 쉬며 생존하는 편을 택했다. 정부는 그에게 회유와 감시용 직책을 주었고 인내심 강한 그는 어떻게든 복음 전파와 후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앙겔라의 어머니는 더 이상 영어교사를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자녀들의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학교의 세뇌로 공산화되지 않도록 매일 일정 시간을 대화와 토론으로 채웠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의심하는 법, 비판하는 법, 토론하는 법, 사고력 키우는 법을 훈련했다. 앙겔라 마르켈 총리의 수차례에 걸친 대연정의 성공, 유럽연합(EU) 지도자들과의 활발하고 친밀한 정책 결정 방식은 이 시기에 형성됐다.

앙겔라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신중했고 눈치도 빨랐다. 화장실에 숨어 몰래 서독 방송을 들으며 정치 감각을 키웠다. 전공을 물리학으로 택한 것 또한 공산주의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해서였다. 뛰어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연구소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조국이 처한 상황과 국제질서는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통일은 갑자기 닥쳤다. 1989년, 베를린 장막이 거두어지고 동독 총리가 선출되었을 때 준비된 젊은 박사는 총리의 부대변인이 된다. 연이어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의 러브콜을 받아 순식간에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에 오른다. 그것은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콜 총리가 동독 출신의 조용한 물리학자를 내각에 앉힌 것은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2005년부터 2021년까지 독일을 지휘한 이 경이로운 여성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독일인들은 그들의 총리에게 ‘무티(Mutti·엄마)’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녀의 재임 기간에 태어난 남학생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 그가 자라나던 시절은 오직 한 사람의 총리, 여성인 앙겔라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인들은 그녀를 이렇게 묘사한다. 사심 없음, 과시욕 없음, 늘 같은 헤어스타일과 복장, 겸손함, 온화함, 포용력, 협치 능력, 신중함, 결단력, 청렴함, 훌륭한 정책 실현…. 이 모든 미덕을 뭉뚱그리면 ‘여성 리더십’, 즉 ‘엄마 리더십’이다. 그녀는 엄마의 덕성을 두루 갖추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지긋이 경청하여 하나로 묶는 능력, 무시와 조롱을 참아 내는 마음, 가족(국가)의 행복을 위해 불의와 부패를 단호히 끊어 내는 결단, 구석구석 살피며 정책을 구현하는 살림 솜씨!

앙겔라 메르켈은 유학이 상정한 ‘천명’의 모습과 닮았다. 천명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거두고 먹이고 입힌다. 천명은 여성적, 아니 모성적이다. 이 천명을 받은 지도자인 천자는 단순히 권력을 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와 백성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앙겔라는 정치를 권력으로 구성하지 않았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과 힘은 국민을 위해 사용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했다. 통일 독일은 부유해지고 강건해지고 반듯해지고 국제 무대에서의 발언권이 강해졌다.

앙겔라 시대의 가장 큰 위기라면 시리아 난민 수용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한 결단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국민들의 반발도 컸다. 자신들의 ‘엄마’가 ‘남의 자식들’을 관대하게 포용해서였을까. 하지만 당시의 연설을 보면 앙겔라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희망은 어떤 일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은 아니지만 결과의 성패와 상관없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여러 번 찾아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사과한 지도자의 마음 또한 엿보이는 발언이다.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선거가 목전이다. 천명을 받들어 인류를 품고 엄마처럼 국민을 살피고 돌보고 먹일 지도자의 탄생을 대망한다.

최문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