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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자유주의 전파를 위한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가 최근 공영 어린이 TV채널을 대폭 개편해 시장경제 이념과 반공 사상을 담은 만화영화를 방영하기로 한 게 특히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밀착해 자칭타칭 일명 ‘아르헨티나의 트럼프’인 밀레이는 집권 1년 만에 살인적 인플레션을 잡아 국제사회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12월 대선 때 내건 ‘자유, 젠장, 자유!’(Libertad, carajo, Libertad!) 기조를 살린 긴축 및 시장 중심 정책이 일정한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르헨티나 공영 교육방송 ‘파카파카’는 28일(현지시간) “수개월간 노력 끝에 7월부터 새롭게 단장한 모험을 어린이 여러분께 다시 선사한다”며 주요 프로그램 라인업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다. 일본 만화영화 ‘드래곤볼Z’를 비롯해 ‘아르헨티니토스’ ‘울트라좀비’ 등 어린이들에게 인기 높은 콘텐츠가 포함된 가운데 미국 제작사 ‘에인절 스튜디오’의 ‘터틀 트윈스’에 가장 눈길이 쏠린다.
동명의 원작 만화에 바탕한 애니메이션 ‘터틀 트윈스’는 미국 유타주(州) 싱크탱크(리베르타스연구소) 설립자이자 대표가 기획한 시리즈로, 좌파 이념 중심 공교육에 불신감이 높은 홈스쿨링 가정이나 보수 기독교계에서 환영받고 있다. “호기심 충만한 쌍둥이 남매가 할머니와 함께 시공을 넘나들며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교훈을 얻는 내용”인데, 프레데릭 바스티아·프리드리히 하이에크·루드비히 폰 미제스 등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사상을 각색한 것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보면 ‘터틀 트윈스’ 주인공들이 밀턴 프리드먼(1912~2006)·애덤 스미스(1723~1790) 등 캐릭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사회주의 경제의 아이콘이자 혁명가인 칼 마르크스(1818~1883)와 말싸움하는 대목도 있다. 한 에피소드에선 등장인물들이 쿠바 아바나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통치 이래의 사회주의 현실을 꼬집으며 쿠바를 “쓰레기가 널린 나라”로 묘사한다. 또 싸구려 금속을 녹여 만든 현지 동전에 대해 주인공이 “속임수 같다”고 하자, 애니메이션 캐릭터 프리드먼이 “(사회주의) 정부란 늘 그렇다”는 대꾸를 한다.
원작 만화의 등장인물 이름 중엔 아예 ‘하비에르 밀레이’가 있다. 육상대회 1등을 차지했음에도 평등주의 교사 때문에 메달 양보를 강요받고 분노하는 캐릭터다. 아르헨티나 현 정부 행보의 핵심에 밀레이 대통령이 있음을 상징한 설정으로 보인다. 경제학 교수 출신인 밀레이의 반려견들까지 매스컴을 탔다. 반려견들 이름이 자유시장을 중시한 경제학자들(밀턴 프리드먼·머리 로스바드·로버트 루카스 등)의 퍼스트 네임들이다. 이 모든 게 아르헨티나 현재·미래에 대한 뼈져린 고민을 반영한다.
파카파카는 케추어 원주민어로 ‘숨바꼭질’을 뜻한다. 2010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채널이며 2∼12세 어린이가 주 시청층이다. “좌파의 홍보 수단”이라는 밀레이의 비판이 이어진 끝에 결국 채널 운영 주체와 예산 편성 조정 등 대대적 개편 작업을 진행하게 됐다. “어린이용 콘텐츠로서 적절한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한 현지 일간 클라린 등 반응이 있으나 반대 목소리가 지배적이진 않다. 밀레이정부를 등장시킨 유권자들이 지난 100년 극과 극을 오간 자국 역사의 문제에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혜의 환경과 자원으로 20세기 전반까지 세계 7~10대 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분배·복지를 내세운 좌파 포퓰리즘 아래 국가를 망가뜨린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아르헨티나가 베네수엘라와 다른 길을 가기로 작정하고 뽑은 인물이 밀레이인 셈이다. 1999년 이래 베네수엘라에 우고 차베스 정부, 그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집권이 이어지면서 20여년간 고국을 등진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래서 쿠바 이민자와 함께 미국 내 주요 이주민 커뮤니티를 형성한 베네수엘라계 미국인들은 대부분 트럼프 지지자들이다.
2019년 2월 플로디다주 베네수엘라 교민행사 때 한 첫 임기 트럼프의 연설 역시 매우 유명하다. “사회주의는 번영을 약속하지만 빈곤을, 단결을 말하지만 증오와 분열을 가져올 뿐” “역사와 인간본성의 무지에 기반한 슬프고 용도폐기된 이데올로기” “다양성을 중시한다면서 절대적 순응 강요” “정의·평등·가난구제와 무관한, 지배계급의 권력에만 관심 있는 자들의 논리” “그들이 의료·금융·교통·교육 등을 지배하면 결과는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부정·부패·착취”라는 트럼프 연설 영상 번역판이 온라인에 퍼져 있다.
앞서 체 게바라를 기린 건물 폐쇄 결정 또한 화제를 불렀다. 아르헨티나 태생이면서 여러 나라 공산주의 혁명에 관여한 체 게바라는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아 온 좌파 스타다. 밀레이정부가 라닌 국립공원 내 ‘라파스테라’(체 게바라 박물관) 운영자인 공무원 노조(ATE)와의 계약 갱신을 거부한 이튿날(8일), 대통령실의 마누엘 아도르니 대변인이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해당 박물관의 유지·관리를 “국가 재원으로 테러리스트의 삶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박물관을 15년 이상 운영해 온 ATE에선 “이념적 편견에 의한 조치”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으나 국립공원청(APN)은 정부 조치를 적극 반겼다.
크리스티안 라르센 APN 청장이 SNS 동영상에서 “체 게바라는 결코 롤모델이 아니었다”며 “그간 국민 모두의 자산인 라닌 국립공원을 특정 이념 교육의 장으로 이용해 온 것”을 비판했다. 이에 ATE는 1990년 국립공원 민영화 추진 당시 지역 주민들이 힘을 모아 저지시킨 역사적 상징물로 태어난 게 체 게바라 박물관이라고 주장했다. 밀레이정부의 이번 결정을 “역사에 대한 도발과 부정의 또 다른 사례”라며 성토하기도 했다.
남부 네우켄주에 위치한 라닌 국립공원(41만 헥타르 규모)은 장대한 자연공원으로 아르헨티나 특유의 화산·산·호수 등 절경을 자랑한다. 체 게바라가 1952년 첫 번째 남미 여행을 시작했을 때 목초지 창고였던 현 박물관 라파스테라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 인연으로 이곳은 전 세계 체 게바라 팬들에게 아르헨티나 방문 시 주요 코스의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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