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벼랑 끝에 선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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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상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5-30 00:02:30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부동산 중개소. 게시판에는 ‘급매’ 딱지가 붙은 매물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40대 가장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계산기를 두드리며 치솟는 이자를 어떻게 감당할지 머리를 싸맨다. 일부는 수천만 원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매각을 결정한다. 5년 전 ‘영끌’로 어렵사리 내 집을 마련했던 이들이 이제는 매달 도착하는 원리금 고지서를 앞에 두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7월부터 ‘스트레스 DSR 3단계’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대출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강도 높은 규제다. 가계부채 증가와 서울 집값 상승을 잡겠다는 명분이지만 정작 효과는 의문이다. 이미 자산시장으로 자리잡은 한강 벨트의 고가 주택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되레 중·저가 주택을 찾는 실수요자들만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해 길이 막히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만 오히려 더 멀어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대출 제한에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 여파로 초저금리 시절인 2020년 많은 이가 2%대의 고정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부터 이들 대출이 변동금리로 전환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자 부담이 평균 4~5% 수준으로 급등하자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갈아타려는 이가 늘었지만 스트레스 DSR 규제로 대출 한도 자체가 줄어들면서 갈아타는 것도 쉽지 않다. 일부는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시장에 내놓거나 심지어 경매로 넘어가고 있다. 실제로 올해 1~4월 부동산 임의경매 신청 건수는 4만6000건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10년간 최대치를 기록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도미노처럼 경제 전반에 균열을 내고 있다. 국내 최대 철근 생산공장인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건설 수요 감소로 철근 가격이 떨어지자 7월부터 한 달간 가동을 멈추기로 했다. 다른 철강업체들 역시 구조조정에 돌입하며 허리끈을 졸라매고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며 대출을 죄고 있지만 정작 연체율을 낮추고 시장을 연착륙시킬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시중에 풀린 2000조 원 규모의 가계부채는 단순한 규제만으로는 줄어들지 않는다. 분양 아파트 물량이 입주 시점을 맞이하면 대출 없이는 입주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부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부동산시장의 거래 흐름까지 뒤틀고 있다. 수요는 있으나 거래는 없고 거래가 있어도 실수요는 빠져 있다. 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집을 팔아도 남는 게 없고 누군가는 집을 사고 싶어도 대출이 안 된다. 이대로라면 부동산은 경제의 견인차가 아니라 위기를 증폭시키는 기폭제라 할 만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재설계다. 실수요자를 중심에 둔 새로운 정책 설계가 절실하다. 부동산 정책이 부자에게는 더 많은 자산을, 서민에게는 더 무거운 빚을 안겨 주는 구조라면 그것은 시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확대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무너지는 건설 현장, 늘어나는 가계 빚, 쏟아지는 경매 물건, 멈춰 선 철강공장. 아무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이 질주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정직하게 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혼돈의 시대에 가장 큰 위험은 혼돈 자체가 아니라 어제의 논리를 무작정 답습하는 게 아닐까.

임한상 차장대우 hsr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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