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사람들은 흔히 용감한 사람은 원래 용감하고, 겁많은 사람은 원래 소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기질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손자병법에서는 “勇怯 勢也(용겁 세야), 強弱 形也 (강약 형야)”라고 했다. 용기와 비겁함은 세(勢)에, 강함과 약함은 형(形)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어서 “亂生於治, 怯生於勇, 弱生於強(난생어치, 겁생어용, 약생어강)”이라고도 했다. 질서와 혼란, 용기와 두려움, 강함과 약함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의 기질보다 행동을 좌우하는 조건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군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보급과 퇴로를 확보했다면 평범한 병사도 용기를 낼 수 있다. 반대로 포위되어 보급이 끊기고 지휘 체계마저 무너지면 정예병조차 두려움에 흔들릴 수 있다. 핵심은 용감한 병사를 찾는 데 있지 않고, 병사들이 용기를 발휘할 ‘구조와 형세’를 만드는 데 있다.
‘형세가 담대함을 만든다’는 손자의 통찰은 전장을 넘어 예술과 인생의 노년, 그리고 경영의 세계에서도 선명하게 작동한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수전 구바는 최근작 ‘피날레’에서 신체적 쇠퇴에도 담대하게 말년의 자신을 재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조명했다. 70세에 회고전을 열고도 28년을 더 살며 거대 거미 조각 ‘마망(엄마)’을 남긴 루이즈 부르주아,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뉴멕시코 사막에서 단순하고 상징적인 그림으로 ‘노년의 아이콘’이 된 조지아 오키프가 대표적이다.
무엇이 이들을 담대하게 만들었을까. 노년에 새로 생겨난 능력이 아니다. 수전 구바는 노년을 사회적 기대와 타인의 시선, 가정의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에게 더 충실해지는 시기로 보았다.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새로운 형세(勢)가 표현의 자유와 담대함을 불러온 것이다.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45세에 창업해 3조 원 매출 신화를 쓴 다이소의 박정부 회장, 47세에 코스트코를 창업한 짐 시네갈, 54세에 스크린골프 벤처를 일군 골프존 김영찬 회장 등은 모두 40~50대 이후 사업을 시작해 정상에 올랐다.
이들의 도전을 설명하는 열쇠 중 하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배수진의 절박함이었다. 손자병법 ‘구지편’의 ‘投之亡地然後存, 陷之死地然後生(망할 땅에 던져진 후에야 살아남고, 죽을 땅에 빠뜨려진 후에야 살아난다)’은 이와 맞닿아 있다. 평생 축적된 경험(形)이 판단을 뒷받침했다면, 절박함은 결단을 재촉하는 기세(勢)가 되었을 것이다. 늦은 출발은 불리한 조건이지만, 경험과 절박함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힘이 되었다.
전장에서는 지휘 구조와 진형이 병사의 행동을 바꾸고, 예술에서는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이 창작의 보폭을 넓히며, 경영에서는 경험과 절박함이 새로운 도전을 이끈다. 용기 있는 행동을 타고난 기질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조직이 무기력하다면 구성원의 의지보다 도전하기 어려운 구조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뛰어난 리더는 용감한 사람을 찾기보다, 평범한 사람도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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