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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화를 신지 않아도 전장의 흙냄새와 포화 소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99분의 체험 ‘전장의 유산’이 21일 개봉했다. 6·25전쟁 발발 7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전장의 유산’은 전쟁의 숨은 영웅을 발굴해 내며 한국전쟁사를 다시 쓰고 있다.
영화는 6·25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한국을 도왔던 미군의 헌신과 애국정신으로 기꺼이 목숨을 내놨던 학도병들의 희생을 다루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 ‘희생’을 주제로 수준 높은 전쟁 대서사시를 완성한다.
196만 유엔군 중 미군만 179만 명
6·25전쟁에 참전했던 196만 명의 유엔군 중 미군의 수는 179만 명에 달했다. 영화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미군의 낙천성과 전우애를 부각한다.
특히 서울 수복의 바탕이 된 인천상륙작전에서 자신이 떨어트린 수류탄 때문에 소대원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온몸으로 유탄을 덮쳐 대원들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폭사한 발도메로 로페즈(25) 중위의 사연을 영상에 곁들여 전달해 관객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장의 유산’을 연출한 김채영 감독은 “교과서 너머의 전쟁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국방부와 국가기록원과 미국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재단과 협업하여 세계 각 아카이브를 샅샅이 뒤졌다”고 밝혔다.
그가 수집한 필름만 4테라에 이른다. 이렇게 찾아낸 미공개 6mm 필름을 4K 디지털 화면으로 복원 공개한 것이다. 김 감독은 복원 필름의 60%가 미군 촬영분이라고 밝혔다. 익숙한 6·25전쟁임에도 모든 장면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할 수 없는 필름은 AI의 힘을 빌려 재생했다. 대표적으로 인천상륙작전 당시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가 온몸으로 수류탄을 덮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AI 영상임에도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 긴박했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자막에는 AI 도움을 빌린 영상임을 밝혀 관객의 혼동을 막았다.
또 한 번 AI 영상이 빛을 발했던 것은 1950년 12월15일부터 24일까지 있었던 흥남 철수작전 부분이었다.
미10군단 산하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 9병단의 포위에 걸려 섬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유엔군은 흥남으로 철수해 해상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북한 주민도 공산당의 총칼을 피해 흥남부두에 모여들었는데 수송선이 넉넉하지 않았던 미군은 이들을 데려가길 주저했다. 그러나 “북한 피란민들을 구출하라”는 맥아더 원수의 명령에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군은 10만여 피란민을 배에 태우게 되었다.
특히 12월23일에 출항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군함이 아닌 상선임에도 일본에서 ‘만땅’으로 싣고 온 항공유를 모조리 바다에 버리기까지 하면서 가장 많은 피란민을 태웠다.
이 배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을 뿐 아니라 5명의 생명이 태어나는 감격의 시간을 맞이하기까지 했다. 김 감독은 바로 이 순간, 갓 태어난 생명을 품에 안고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AI로 재현했다.
AI 활용으로 완성도 높여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는 경북 포항여중 전투에 참전했던 학도병들의 이야기다. 1950년 8월11일 연대급 북한군이 포항을 포위 공격해 오자 학도의용군 71명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11시간 동안 전투를 벌였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무기조차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교복을 입고 참전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반이 넘는 48명의 학도병이 전사했다. 그들이 북한군과 싸우는 사이 제3사단 사령부는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
당시 전사자 중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 학도병(1934~1950)의 옷 속에서 수첩이 발견됐는데 그 속에는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글이 적혀 있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 그런데 어머니,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우근 학생의 말대로 그의 내복은 수의가 되었다. 그리고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다는 말,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다는 말은 실현되지 못한 채 유언으로 남았다.
성우의 피 끓는 편지글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관객은 뜨거운 눈물을 찍어 냈다.
한편 영화 펀딩에 참여했던 김병준 자교모(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교수 모임) 공동대표는 반공포로 석방을 결정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 잘 부각됐다고 말했다. 이승만 정권은 1953년 6월18·19일 부산·광주·논산 등 전국 8개 지역의 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 2만7000여 명을 탈출시켰다.
영화는 이 사건이 첫째, 인류애를 널리 전파하고 둘째, 휴전을 박기 위한 빌미가 됐고 셋째 한미방위상호조약을 끌어내는 데 큰 수훈을 세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김채영 감독은 수집한 필름의 5%도 사용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2탄, 3탄을 제작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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